달을 보고 우는 개

- 김훈 장편소설「개」중에서 -
밤중에 달을 쳐다보고 짖는 개는 슬픈 꿈을 꾸는 개다. 이런 개들은 달을 향해 목을 곧게 세우고 우우우우 짖는다. 짖는 소리가 아니라 울음에 가깝다.
보름달은 가까워 보이고 초승달이나 그믐달은 멀어 보인다. 보름달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달이 점점 세상 쪽으로 다가 오는 것 같다. 달이 다가오면서 세상은 점점 환해지고, 먼 산의 등성이까지도 눈앞에 가까이 보이는데, 달한테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고 아무런 냄새도 풍겨오지 않는다.
달을 쫓아서 들판을 달리고 또 달리면, 가까이 다가오던 달은 멀리 달아난다. 밟을 수 없고 물어뜯을 수도 없는데, 밟을 수도 물어뜯을 수도 없는 달은 세상을 환히 비추면서 점점 가까이 다가온다.
그믐달을 들여다보면, 달은 이 세상에서 점점 멀어지는 것 같다. 새파란 칼처럼 생긴 그믐달의 가장자리가 어두운 밤하늘에 녹아들면서 희미하게 빛날 때, 슬픈 개는 점점 사라져가는 달을 향해 우우우우 운다.
달은 개를 손짓해 부르지만 달은 개의 울음을 듣지 못한다. 알 수도 없고 다가갈 수 없고 발 디딜 수 없는 그 먼 것을 향해 개는 울고 또 운다. 우는 개는 주인집 개장국 솥 속에서 죽더라도, 죽어서 이 다음에 달 속의 개로 태어나고 싶은 꿈을 꾸는데, 그 꿈이 달밤의 개를 울리는 것이다. 그래서 개 한 마리가 달밤에 울면, 그 울음소리가 온 동네에 퍼지고 울음이 또 울음을 불러와서 온 동네 개들은 울음에 울음을 잇대어가며 울고 또 운다.
묶인 수캐들도 우우우우 운다. 이웃 암캐의 몸냄새가 봄밤의 꽃냄새 속에 섞여서 풍겨올 때 묶인 수캐들의 몸 속에서는 화산 같은 울음이 터진다. 수캐들은 뒷발로 땅을 긁다가, 앞발을 들어서 달 쪽을 쥐어뜯다가, 이빨로 쇠사슬을 물어뜯다가, 이도저도 못 하고 우우우우 운다. 개들의 슬픔은 전염병처럼 번진다. 수캐 한 마리가 우우우우 울면, 그 울음이 다른 수캐의 슬픔을 일깨워서 우우우우 울고 온 동네 수캐들이 따라서 울고 온 동네 암캐들도 따라서 운다. 우우우우...... 컹컹컹......
소설가 김훈의 장편소설「개 - 내 가난한 발바닥의 기록」(2005.7.18, 푸른숲)을 찾아 읽었다. '보리'라는 이름의 진돗개를 화자로 한 일인칭 소설로 <칼의 노래>, <남한산성> 등 그의 대표작과는 궤를 달리하는 동화같은 소설이다. 복잡한 인과관계나 갈등, 극적 장면 등이 없이 한마리 수캐 '보리'의 시선과 감각으로 보고 느끼는 세상사와 인간, 개의 일상을 담담하게 그렸다. 긴장감을 주는 스토리는 없지만 술술 잘 읽히는 것은, 사람과 개의 관계항 속에 펼쳐지는 우리네 삶의 이야기이며, '보리'가 굳은 살 발바닥으로 온갖 곳을 헤집고 뛰어난 후각으로 훑어 보이는 것들이 매우 흥미롭고 시사적이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김훈 작가 특유의 문장력임에랴!!
책의 머릿말에서 김훈 작가는 이렇게 적었다. “개 발바닥을 들여다 보았다. 발바닥에 새카만 굳은살이 박여 있었다. 그 굳은살 속에는 개들이 제 몸의 무게를 이끌고 이 세상을 싸돌아다닌 만큼의 고통과 기쁨과 꿈이 축적되어 있었다. 그것은 개들의《삼국유사》였다. 수억만년 전, 어느 진화의 갈림길에서 나는 개들과 헤어졌던 모양인데, 개발바닥의《삼국유사》는 그 수억만년의 시간을 거슬러서 내 앞으로 당겨 주었다. 나는 개발바닥의 굳은살을 들여다보면서 어쩌면 개 짖는 소리를 알아들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세상의 개들을 대신해서 짖기로 했다. 짖고 또 짖어서, 세상은 여전히 고통 속에서 눈부시다는 것을 입증하고 싶었다.”
소설의 여운이 제법 오래 가는 것 같다. '보리'가 짝사랑한 암캐 '흰순이'가 사람들의 보신을 위해 때려 잡히는 장면이 자꾸 눈앞에 어른거린다. 즐기는 친구들과 두달에 한번 모이는 우리 동네 “개성옥” 갈 일이 슬그머니 두려워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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