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세 김흥수 화백, 먼저 떠난 마흔살 연하 부인을 그리다
 김흥수. 장수현 초상,145x112cm, 종이에 목탄, 연도 미상
연희동 CSP111 아트스페이스서 '故 장수현 1주기 추모전'
"생전에 우리 장수현 관장이 나한테는 작품을 통 안 보여줘서 이번에 처음 봤는데 걸어놓고 보니 아까운 사람이 너무 일찍 떠났구나 싶네요." 10월17일 낮 연희동 CSP111 아트스페이스에서 만난 김흥수(金興洙, 94세) 화백은 지난해 먼저 떠나보낸 부인 고(故) 장수현(1962-2012) 김흥수미술관장의 그림을 바라보며 잠시 추억에 잠겼다. 구상과 추상을 한 화면에 담는 '하모니즘' 을 창시한 김흥수 화백과 그의 예술적 동반자이자 부인이었던 장 관장은 스승과 제자로 만나 43살의 나이 차를 극복하고 1992년 부부의 연을 맺어 화제를 모았다. 미술학도였지만 김 화백과 결혼하고서는 자신의 꿈을 접고 내조에 힘쓰며 김 화백의 하모니즘의 동지이자 지지자로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90년대 초 김흥수 하모니즘 초대전을 프랑스 파리 뤽상부르 미술관, 러시아 에르미타주 미술관과 모스크바 푸슈킨 미술관 등에서 열었고 90년대 말부터는 김흥수미술관을 건립해 미술 영재교육에도 힘썼다. 바쁜 와중에도 틈틈이 붓을 든 장 관장의 작품을 김 화백이 보게 된 것은 그가 지난해 11월 13일 지병으로 세상을 떠난 이후다.
"장 관장이 생전에는 늘 숨어서 작업하고 내게는 절대 자기 작품을 보여주지 않았어요. 대학시절 그린 그림도 있고 언제 그렸는지 모르는 그림도 있는데 더 오래 살고 경험도 쌓였다면 더 훌륭한 작품을 만들었을 겁니다."
20여 년간 남편에 헌신하느라 1992년 유나화랑에서 함께 부부전을 열었을 뿐 한 번도 개인전을 열지 못한 부인이 안쓰러웠던 김 화백이 장 관장의 1주기를 앞두고 꼭꼭 숨겨뒀던 부인의 그림을 세상에 꺼내 보인다.
연희동 CSP111 아트스페이스에서 10월17일 개막하는 장수현 관장 1주기 추모전 '故 장수현, 김흥수 예술의 영원한 동반자'에서는 장 관장의 유작 30여 점이 전시된다. 김 화백도 1991년 그렸던 부인의 초상 드로잉과 부인이 태어나던 해인 1962년에 그린 '염원' 등 부인을 추억하며 고른 4점을 선보인다.
부인의 작품 가운데 특히 애착이 가는 그림을 물으니 발가벗은 여인 2명이 나란히 서 있는 누드화(아래 사진)를 가리켰다. "이 그림을 걸면서 '이렇게 자유롭고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나' 생각했습니다. 생전에 나한테 보여줬다면 오른쪽 여성의 왼쪽 팔은 그리지 말라고 했을 텐데 말입니다.(웃음) 내 그림과 나란히 걸어놔도 손색없는 작품이니 얼마나 좋은 작가였는지 알 수 있을 겁니다."
장수현. 제목 미상, 145x112cm, oil on canvas, 1983~6
김 화백에게 장 관장은 어떤 부인이고 어떤 화가였을까.
"마음도 아름답고 재주있는 사람이었어요. 너무 고집이 세어서 다른 사람 말은 안 듣고 생각하는 대로 실천하는 신념 있는 사람이었지요. 아무리 충고를 해도 소용없었고요. 그래서 이렇게 좋은 작품을 만들어놓고도 한 번도 보여주지 않고 혼자 숨겨둔 것이겠지요. 늘 내 그늘에서 벗어나려고 했는데 그런 생각이 이렇게 그림에서 드러나지 않았나 싶습니다."
부인을 먼저 떠나보내고 거동이 불편해 휠체어에 몸을 의지하면서도 작업에 대한 열의만은 여전한 그는 "하모니즘을 세계에 널리 알리고 싶었는데 국내에서 너무 몰라줘서 잘 안 됐다. 어려운 상황에 굴하지 않고 재기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작업해 여러분의 기대에 부응할 것"이라고 각오를 다졌다. 전시는 12월 7일까지. ☎02-3143-0121. (연합뉴스 박인영 기자, 2013.10.17)
'하모니즘' 창시자 김흥수 화백의 작품세계 (MBN뉴스 박통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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