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공간/좋은글,감동글

어떻게 죽을것인가

어르신1 2020. 5. 10. 08:40

 

★.. 어떻게 죽을것인가 ****

 

어떻게 죽을 것인가~~

망팔(望八)이 되니까 오랫동안 소식이 없던 벗들 한테서 소식이 오는데 죽었 다는 소식이다 살아 있다는 소식은 오지 않으니까 소식이 없으면 살아 있는 것이다. 지난달에도 형뻘 되는 벗이 죽어서 장사 를 치르느라고 화장장에 갔었다 화장장 정문에서부터 영구차가 밀 려 있었다.

관이 전기 화로 속으로 내려 가면 고인의 이름 밑에 소각 중이라는 문자 등이 켜지고 40분쯤 지나니까 소각 완료 또 10분쯤 지나니까 냉각중 이라는 글자가 켜졌다 10년쯤 전에는 소각에서 냉각까지 100분 정도 걸렸는데 이제는 50분으로 줄었다. 기술이 크게 진보했고 의전 을 관리하는 절차도 세련되 다 냉각 완료되면 흰 뼛 가 루 가 줄줄이 컨베이어 벨트 에 실려서 나오는데 성인 한 사람분이 한 되 반 정도였다. 직원이 뼛가루를 봉투에 담아서 유족들에게 하나씩 나누어 주었다 유족들은 미리 준비한 옹기에 뼛가루를 담아서 목에 걸고 돌아갔다.

원통하게 비명횡사한 경우 가 아니면 요즘에는 유족들 도 별로 울지 않는다. 부모를 따라서 화장장에 온 청소년들은 대기실에 모여 서 아이스크림을 먹고 스마 트폰으로 게임을 하고 있었 다. 제 입으로 "우리는 호상(好喪)입니다 라며 문상객을 맞는 상주도 있었다.

그 날 세 살 난 아기가 소각 되었다. 종이로 만든 작은 관이 내려갈 때 젊은 엄마는 돌아서서 울었다. 아기의 뼛 가루는 서너 홉쯤 되었을 터이다. 뼛가루는 흰 분말에 흐린 기운이 스며서 안개 색깔이었다. 입자가 고와서 먼지처럼 보였다. 아무런 질량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물체의 먼 흔적이나 그림자였다. 명사라기보다는 흐린이라 는 형용사에 가까웠다.

뼛가루의 침묵은 완강했고 범접할 수 없는 적막 속에서 세상과 작별하고 있었다. 금방 있던 사람이 금방 없어 졌는데 뼛가루는 남은 사람 들의 슬픔이나 애도와는 사소한 관련도 없었고, 이 언어도단은 인간 생명의 종말로서 합당하고 편안해 보였다. 죽으면 발길이 끊어져서 죽 은자는 산 자에게 죽음의 내 용을 전할 수 없고 죽은자는 죽었기 때문에 죽음을 인지 할 수 없다. 인간은 그저 죽을 뿐 죽음을 경험할 수는 없다.

화장장에 다녀온 날 저녁마다 삶의 무거움과 죽음의 가 벼움을 생각했다. 죽음이 저토록 가벼우므로 나는 남은 삶의 하중을 버티 어낼 수 있다. 뼛가루 한 되 반은 인간육체 의 마지막 잔해로서 많지도 적지도 않고 적당해 보였다. 죽음은 날이 저물고 비가 오 고 바람이 부는 것과 같은 자연현상으로 애도할 만한 사태가 아니었다. 뼛가루를 들여다보니까 일상생활 하듯이 세수를 하고 면도를 하듯이 그렇게 가볍게 죽어야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 다.

돈 들이지 말고 죽자 건강 보험 재정 축내지 말고 죽자. 주변 사람 힘들게 하지말고 질척거리지 말고 지저분한 것들을 남기지 말고 가자. 빌려 온 것 있으면 다 갚고 가자. 남은것 있으면 다 주고 가자. 입던 옷 깨끗이 빨아 입고 가자. 관은 중저가가 좋겠지. 가면서 사람 불러 모으지 말자. 빈소에서는 고스톱을 금한다고 미리 말해두자.

가볍게 죽기 위해서는 미리 정리해 놓을 일이 있다. 내 작업실의 서랍과 수납장 책장을 들여다보았더니 지금까지 지니고 있었던 것의 거의 전부(!)가 쓰레기 였다. 이 쓰레기더미 속에서 한 생애가 지나 갔다. 똥을 백자 항아리에 담아서 냉장고에 넣어둔 꼴이었다.

나는 매일 조금씩 표가 안 나게 이 쓰레기들을 내다버린다. 드나들 때마다 조금씩 쇼핑백에 넣어서 끌어낸다. 나는 이제 높은 산에 오르지 못한다. 등산 장비 중에서 쓸 만한 것들은 모두 젊은이들에게 나누어주었고 나머지 는 버렸다. 책을 버리기는 쉬운데, 헌 신발이나 낡은 등산화를 버리기는 슬프다. 뒤축이 닳고 찌그러진 신발은 내 몸뚱이를 싣고 이 세상의 거리를 쏘다닌 나의 분신 이며 동반자이다. 헌 신발은 연민할 수밖에 없는 표정을 지니고있다. 헌 신발은 불쌍 하다. 그래도 나는 내다 버렸다.

뼛가루에게 무슨 연민이 있겠는가 유언을 하기는 쑥스럽지만 꼭 해야 한다면 아주 쉽고 일상적인 걸로 하고 싶다.

딸아 잘생긴 건달 놈들을 조심해라.

아들아 혀를 너무 빨리 놀리 지 마라.

정도면 어떨까 싶다.

오래전에 돌아가신 나의 아버지는 스스로 '광야를 달리는 말(!)'을 자칭했다. 아버지는 집 밖으로 나돌면서 평생을 사셨는데 돌아가 실 때 유언으로 미안허다를 남겼다. 한 생애가 4음절로 선명히 요약되었다. 더 이상 짧을 수는 없었다. 후회와 반성의 진정성이 느껴지기는 하지만 이것은 좋은 유언이 아니다. 이미 돌이킬 수 없이 늦었고 대책 없이 슬프고 허허로워서 어쩌자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퇴계 선생님은 죽음이 임박 하자 조화를 따라서 사라짐이여 다시 또 무엇을 바라겠는가 라는 시문을 남겼고, 임종의 자리에서는 매화에 물 줘라 하고 말씀하셨다고 제자들이 기록했다. 아름답고 격조 높은 유언이지만 생활의 구체성이 모자란다.

내 친구 김용택 시인의 아버지는 섬진강 상류의 산골 마을에서 평생 농사를 지으며 사셨다 김용택의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김용택을 불러놓고 유언을 하셨는데 네 어머니가 방마다 아궁이에 불 때느라고 고생 많이 했다. 부디 연탄보일러를 놓아드려라 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이 이야기를 김용택의 어머니 박덕성 여사님한테 서 직접 들었다. 몇 년 후에 김용택의 시골집 에 가봤더니 그때까지도 연탄보일러를 놓지 못하고 있었다. 나의 아버지, 퇴계 선생님, 김용택의 아버지, 이 세 분의 유언 중에서 나는 김용택 아버지의 유언이 최고라고 생각한다.

이 유언은 건실하고 씩씩하고 속이 꽉 차 있다. 김용택 아버지는 참으로 죽음을 별것 아닌 것으로 아침마다 소를 몰고 밭으로 나가듯이 가볍게 받아들이셨다. 그리고 숨을 거두는 순간에도 인생의 당면 문제 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인식 하고 있었다.

이 정도 유언이 나오려면 깊은 내공과 오래고 성실한 노동의 세월이 필요하다.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다.

삶은 무겁고 죽음은 가볍다. 죽음과 싸워서 이기는 것이 의술의 목표라면 의술은 백전백패 한다 의술의 목표 는 생명이고 죽음이 아니다.

이국종처럼, 깨어진 육체를 맞추고 꿰매서 살려내는 의사가 있어야 하지만 충분히 다 살고 죽으려는 사람들의 마지막 길을 품위 있게 인도해주는 의사도 있어야 한다.

죽음은 쓰다듬어서 맞아들 여야지 싸워서 이겨야 할 대상이 아니다. 다 살았으므로 가야하는 사람의 마지막 시간을 파이프를 꽂아서 붙잡아 놓고서 못 가게 하는 의술은 무의미하다. 가볍게 죽고 가는 사람을 서늘하게 보내자. 단순한 장례 절차에서도 정중한 애도를 실현할 수 있다. 가는 사람도 보내는 사람도 의술도 모두 가벼움으로 돌아가자.

뼛가루를 들여다보면 다 알 수 있다. 이 가벼움으로 삶의 무거움을 버티어 낼 수 있다. 결국은 가볍다.

 

작성: 한국 네티즌본부


'생각하는 공간 > 좋은글,감동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노인처세 명심보감  (0) 2020.04.26
축복 받은 사람  (0) 2020.03.24
늙어가는길 누구나 초행길이다  (0) 2020.03.24
인생의 짐  (0) 2020.02.29
당신의 향기가  (0) 2020.0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