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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투설(暗鬪說) - 이광식

어르신1 2014. 12. 12. 20:17

 

 







암투설 (暗鬪說)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현대의 정당 간 투쟁은 그 양상이 세상에 드러난다는 점에서 정당한 경쟁이지 결코 암투가 아니다. 하지만 사실 모든 권력 투쟁은 대체로 암투라 하여 지나치지 않다. 햇빛에 드러나지 않게, 치사하고 더럽게, 잔인하고 무섭게 싸우는 암투는 마땅히 해서는 안 될 비정상적 행위다. 그럼에도 역사에선 늘 암투가 횡행했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을 이끌어 혁명정부를 주도하던 로베스피에르의 자코뱅당은 특히 혁명노선을 둘러싼 내부 권력 암투에 휩싸인다. 그리하여 프랑스는 결국 정치적 후퇴로 나폴레옹이 집권하게 돼 유럽 전역을 전쟁의 도가니에 휩쓸리게 하고 만다. 1903년 러시아 사회민주노동자 대회에서 분열된 볼세비키와 멘세비키의 권력 암투로 러시아 국민은 가혹한 고통의 시간을 보냈다. 비정상적 권력 암투가 가져온 불행한 역사다.

조선조 초기 수양대군이 단종의 왕위를 빼앗기 위해 일으킨 계유정란(癸酉靖難) 또한 권력 투쟁의 안타까운 역사다. 유자광과 연산군이 김일손 등의 신진세력인 사림파를 제거하기 위해 일으킨 무오사화(戊午士禍)나, 연산군의 어머니 폐비 윤 씨의 복위 문제로 인하여 일어난 갑자사화(甲子士禍)도 그러하고, 중종이 조광조 등 핵심 인물을 몰아내 죽이거나 귀양 보낸 기묘사화(己卯士禍)와 왕실의 외척인 대윤이 소윤을 몰아낸 을사사화(乙巳士禍)도 권력 암투로 인한 불행한 사건이었다. 신임옥사, 신축옥사, 임인옥사 등 대부분 대규모 옥사 사건도 결국 어두운 권력 투쟁이 낳은 역사이다.

조선 말 고종 시절에는 차라리 암투가 없었다. 명성황후의 기세가 워낙 높아 고종의 총애를 받던 귀인 이 씨, 의친왕을 낳은 귀인 장 씨, 영친왕을 낳은 황귀비 엄 씨 등은 그야말로 찍 소리도 못하고 궁궐에서 쫓겨나야 했다. 현대사에서 지난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전 대통령 암살사건은 중앙정보부장과 경호실장 간의 권력 암투로 일어났으며, 1979년 12월 12일 전두환 군사 반란은 군내 신진 세력과 보수 세력 간의 권력 투쟁이라 해도 좋다.

김영삼 정권 때는 대통령 아들이 비선 실세로서 인사에 개입하고 각종 암투를 마다 않으며 이권을 챙기는 등 국정을 농단했다. 김대중 정권 때는 대통령의 세 아들이 비선으로 청와대 비서관들과 연결돼 국정에 깊이 관여했다. 뒷날 이 아들들은 감옥에 갔다. 비선 그룹 간 암투가 엉뚱한 곳에 이르러 예컨대 김진선 전 평창올림픽조직위원장의 사퇴를 불렀다는 설이 나왔다. 참으로 음습하고도 퇴영적인 소문이다. (2014.12.6 강원도민일보)

- 이광식 (소설가·강원도민일보 논설위원·관동문학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