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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n Je Ne Regrette Rien - Edith Piaf

어르신1 2014. 3. 7. 19:44

 

Non Je Ne Regrette Rien / Edith Piaf 

 

 

 

Non Je Ne Regrette Rien

후회하지 않습니다

Edith Piaf

 

Non Rien de rien

Non Je ne regrette rien

Ni le bien qu'on m'a fait

Ni le mal tout ça m'est bien égal 

 

Non Rien de rien

Non Je ne regrette rien

C'est payé, balayé, oublié

Je me fous du passé

 

Avec mes souvenirs

J'ai allumé le feu

Mes chagrins, mes plaisirs

Je n'ai plus besoin d'eux

Balayés les amours

Et tous leurs trémolos

Balayés pour toujours

Je repars à zéro 

 

Non Rien de rien

Non Je ne regrette nen

Ni le bien, qu'on m'a fait

Ni le mal, tout ça m'est bien égal  

 

Non Rien de rien

Non Je ne regrette rien

Car ma vie, car mes joies

Aujourd'hui, ça commence avec toi

아니에요, 정말 아닙니다

아니에요,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습니다

내가 느꼈던 행복도 불행도

내겐 모두 같은 것이었지요 

 

아니에요, 정말 아닙니다

아니에요,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습니다

그건 보상받았고 정리되었고 잊혀졌습니다

나는 과거에서 벗어났습니다 

 

나의 추억들로

불을 밝힙니다

나의 슬픔, 나의 즐거움

이젠 더 이상 필요치 않습니다

사랑을 정리했습니다,

그것의 전율들로

영원히 정리했습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렵니다

 

아니에요, 정말 아닙니다

아니에요,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습니다

내가 느꼈던 행복도 불행도

내겐 모두 같은 것이었지요 

 

아니에요, 정말 아닙니다

아니에요,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나의 인생 나의 환희

오늘 당신과 함께 시작됐으니까요

 

 

 

아뇨, 전 후회하지 않아요 [Non, Je Ne Regrette Rien]

 

'Non, Je Ne Regrette Rien (후회하지 않아요)'는 알제리 전쟁 (1954-1962) 당시 프랑스 외인부대에 헌정한 노래다. 프랑스 시민권자가 아닌 외국인 병사들로 구성된 부대였다. 그 소수자들을 향해 에디트 피아프(Edith Piaf)는 보편적인 사랑의 추억을 전하는 것으로 희망을 준다. "후회하지 않아, 왜냐면 오늘부터 내 인생, 내 행복, 내 모든 것이 당신과 함께 시작되니까."

 

에디트 피아프의 마지막 대히트곡으로 만년의 명곡 명창으로서 너무도 유명하다. 작사는 가수 코라 보케르의 남편으로 뛰어난 시인이기도 했던 미셸 보케르(Michel Vaucaire), 작곡은 샤를 뒤몽(Charles Dumont)이다. 작사자 미셸 보케르는 1904년 스위스의 브리사고에서 태어난 사람으로, 이버지 모리스 보케르(1863∼1918)는 저명한 샹소니에였는데, 그 혈통을 이어받아 그도 시인 겸 저널리스트로서 활약했다. 파리에 있는 중근동어(中近東語) 학교에서 배워 많은 시집·역사서·여행기 등을 출판했으며 샹송 작사를 시작한 것은 1935년부터였다. 먼저 아뉴스 카프리를 위해 노래를 쓰고, 리 고티·다미아·프렐 등 많은 가수에게 작품을 제공했다. 히트곡도 많이 있는데, 그 으뜸이 이 <아뇨, 전 후회하지 않아요>일 것이다. 1980년 여름에 세상을 떠났다.

 

작곡자 샤를 뒤몽은 1929년 카올 태생으로 어려서부터 피아노를 배웠으며,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재즈에 흥미를 느끼게 되어 친구들과 레코드를 돌려가며 들었다고 한다. 전쟁 후 파리에 올라가 트럼펫을 배우려고 음악원의 문을 두드렸으나 목에 이상이 생겨 피아노로 전향했다. 그리고 여러 샹송 가수의 반주를 하면서 작곡 공

부를 했다. 우연히 시인 프랑시스 카르코에게 소개되어 「노트르담 사원의 탑 아래서」라는 시를 받아 거기에 곡을 붙였는데, 1955년에 코라 보케르가 초연해 주었다. 같은 해의 여름, 도빌의 샹송 콩쿠르에서 그가 작곡한 <선물>이라는 노래 (작사는 로제 노르망)를 여성 가수 다니엘 뒤프레가 불러 에디트 피아프 상을 수상했다. 이로써 샹송계의 신진 작곡가로 조금은 알려지게 되었지만 아직도 생활은 어려웠다. 1958년 올렝피아 극장에서 열린 ‘코크 돌 들 라 샹송’이라는 콘테스트에 출품한 <Envoie La Musique>(작사는 미셸 보케르)이 5위에 입상하고 콜레트 르날이 불러 성공을 거두었다. 이듬해 59년에도 같은 콘테스트에 <Sophie>(작사는 미셸 보케르)를 출품하고 장 필립이 불러 2위에 입상했다. 이 노래는 마르셀 아몽이 불렀고, 다시 “샹송의 벗”이 다루어 상당한 히트가 되었다. 그리고 1960년, 역시 보케르 작사의 <Marion>으로 이 콘테스트의 1위를 획득했다. 미셸 보케르의 소개로 에디트 피아프를 방문했던 것도 같은 해 여름의 일이었다.

 

그 무렵 뒤몽은 군대 행진곡과 같은 느낌이 나는 곡을 하나 썼으며, 거기에 가사를 붙여 달라고 미셸 보케르에게 부탁했다. 완성되었을 때 보케르는 이 노래가 피아프에게 가장 어울린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즉시 전화를 걸어 만나자고 요청을 했던 것이다. 당시의 피아프는 이미 육신 전체가 형편없이 쇠약해져 있었다. 1959년, 지방 순회 공연을 가던 중 다글러스 데이비스가 졸면서 운전을 하여 네번째의 자동차 사고가 일어났다. 그래도 그녀는 무대를 버리지 않고 갈빗대가 부러진 가슴에 기브스를 하고 모르핀 주사를 맞으며 노래했다. 그러다가 스웨덴에서 쓰러졌을 때는 간장도 췌장도 모든 것이 나빠져 있었다. 병과 싸우며 걷는 연습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되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굴의 투지를 불태우며 피아프는 다음의 올렝피아 극장 공연에 착수했다.

 

첫 대면한 뒤몽을 데리고 보케르가 그녀의 집을 방문했을 때, 피아프는 올렝피아 극장에서 부를 곡을 거의 정하여 연습을 되풀이하고 있던 때였다. ‘어쨌든 파이노를 치며 불러 봐요’라는 말을 듣고 뒤몽은 피아노를 치면서 <아뇨, 전 후회하지 않아요>를 불렀다. 그때까지 냉담했던 피아프의 태도가 전혀 바뀌었고, 그리고 당장 이 노래를 올렝피아 공연의 곡목으로 추가할 것을 약속했다. 예정되고 있었던 마르그리트 모노의 곡은 차례 차례 뒤몽의 작품과 교체되었다. 1960년 12월 29일에 개봉된 네번째의 올렝피아 극장 공연에서 피아프는 <아뇨, 전 후회하지 않아요> 외에 <Mon Dieu>·<Les Flonflons Du Bal>·<La Ville Inconnue> 등 뒤몽과 보케르의 콤비에 의한 갖가지 작품을 초연하여 대성공을 거두었다. 만신창이의 피아프가 목숨을 걸고 노래한 이 극적인 콘서트는 지금도 화제가 되고 있다. 이것은 1961년 4월 4일까지 속연되어 소름이 끼치는 두려움이 서린 절창으로 청중을 압도했다. 이리하여 뒤몽은 작곡가로서의 명성을 확립했던 것이다. 그가 에디트 피아프를 알게 되는 계기가 된 명곡 <아뇨, 전 후회하지 않아요>는 제2의 <사랑의 찬가>라고 할 만큼 내용이 힘차다. 에디트 피아프의 명창이 너무도 훌륭한 탓인지 명곡 치고는 레코드가 적다. 그녀 외에는 이렌 베르티에, 이탈리아의 밀바 등의 노래가 있고, 작곡자 샤를 뒤몽은 후에 올렝피아 극장에서 직접 노래하여 라이브 음반에 수록했다.

 

Edith Piaf - Non, je ne regrette rien